상태가 좋지 못해 거의 잠만 잤다. 자고 자고 또 잤다. 일어난 후로는 멍청하게 시간을 보냈다. 평론집을 10 페이지 정도 읽었고 오이디푸스를 잠시 생각했다. 오이디푸스를 처음 만난 건 2011년이었다. 그를 처음 봤을 때 비극을 사랑하게 됐다. 비극이 뭔지도 몰랐지만 비극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해, 그에 대해 아이러니의 이미지를 품고서 그림을 그렸다. 그 다음 해에는 <해변의 카프카>를 다시 읽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그을린 사랑>을 봤다. 재작년에 그를 다시 마주했을 때, 그는 실존주의자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작년 하반기, 두 세 번의 대화 뒤에 그는 파우스트 박사와 닮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모르겠다. 오이디푸스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려면 평생이 걸릴 것 같다. 재작년 연극사 때 오이디푸스에 대한 레포트를 제출했었고, 작년 연극사 때에는 오이디푸스에 대한 발표를 했다. 기말 과제로도 오이디푸스에 대한 레포트를 제출했었고. 내용은 각기 달랐다. 그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착실하게 원형에서부터 멀어지는 신기한 인물이었다. 꼭 그의 인생처럼.
오늘 10 페이지 정도 읽은 평론집에서의 그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잠이 안 온다. 많이 자서 그런 거겠지. 아침에는 세탁기 수리 기사가 집에 올 예정이다. 낮에는 학교에 짐을 옮기러 갈 예정이고. 학교에 갈 생각을 하니 개강이 코앞이라는 게 실감이 난다. 이번 학기는 무사히 버텨낼 수 있을까.
서사창작과 수업을 들을 수 없게 되어서 시간표가 바뀌었다. 금요일에는 11시부터 5시까지 연강으로 세 수업을 들어야 한다. 심지어 3교시 수업과 5교시 수업은 같은 선생님.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날은 힘들 예정이다.
토요일에 또 알바를 간다. 다음주는 진짜 못할 것 같다. 몸이 힘들다. 내일 미리 말해둬야겠다.
요즘에는 일기 외에 글을 안 쓴다. 못 쓴다는 표현이 맞으려나.
내일 없이 살기. 나에겐 내일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졸업을 하지 않을 생각으로 살 거다. 자주 흔들리긴 하지만 4학년 2학기에 자퇴를 하겠다는 생각은 아직 유효하다.
아직도 병원에 가질 않았다. 어제는 약을 못 먹었다. 기분 탓인지 하루만에 증상이 다시 심해진 것 같다. 무기력해져서 아무것도 못하는 걸 보니깐. 아침 일찍 병원에 갔다 오는 게 좋을 것 같다.
자신감을 다시 얻고 싶어서 지난 가을에 썼던 미니픽션을 읽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코멘트도 다시 읽었다. 타인의 평가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존감 낮은 인간이라는 게 싫긴 하지만, 그래도 주눅들어 있는 것보단 나으니깐.
아무것도 없는 생활은 힘들다. 알바 밖에 없는 생활.
밟고 싶다. 밟히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다른 뭔가를 밟아야만 한다. 땅을 밟을지 허공을 밟을지 모르겠다.
피곤하다. 잠을 그렇게나 잤는데 피곤하다니. 내일 알바 갈 생각하니깐 더 피곤하다. 정말 일을 그만둬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차선으로 생각했던 글쓰기 수업을 듣기 위해 선생에게 메일을 보내야 한다. 재작년, 휴학하기 전에 반 학기 정도 같이 공부했던 선생님인데 개방을 허락해 주면 좋겠다.
수분크림을 바꿨는데 좁쌀 여드름이 생기는 것 같다. 내 피부는 성격과 닮았다. 예민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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