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한데요, 머리랑 눈이 아파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요, 일단은 점심에 일어났고, 삼십분 동안 샤워를 했고, 삼십분 동안 머리를 말리고 비비크림을 바르고 틴트를 바르고 립밤을 바르며 나갈 준비를 했고, 학교에 가서 나무 영화관 공포특급 시리즈로 상영해 주는 컨져링을 봤고, 보는 내내 너무 무서워서 다리를 내려놓지 못했고, 쭈욱 양반다리를 하거나 쪼그린 채로 앉아 있었고, 다리에 쥐가 났지만 참았고, 영화를 보고 나온 후에는 화장실에 가서 코랑 이마에 있는 기름을 살짝 닦아줬고, 일반 자료실에 가서 <푸코의 맑스>를 꺼내 읽었고, '말과 사물'에 대한 부분을 읽은 후 권력에 대한 부분으로 넘어갔을 쯤에 시선이 페이지를 못 따라가기 시작했고, <푸코의 맑스> 덮고,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를 펼쳤고, 재미있어서 쭉쭉 읽었지만 모든 게 흘러가서 아무것도 고여있지 않았고, 기억에 남는 문장은 '호두보다 느리게 걷는 자들을 나는 경멸한다' 하나 뿐이었고, 조금 지나서는 눈이 아파서 <여장남자 시코쿠>를 덮고,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을 펼쳤고, 유교수와 어릴적 친구가 장미 가시 아래에서 마주보는 순간, 둘 다 어린 얼굴로 돌아간 순간, 목 아래가 팽팽해졌고, 웃었고, 계속해서 목 아래가 팽팽해진 채로 <천재 유교수의 생활>을 보다가, 5시 48분에 자리에서 일어나 자료실 밖으로 나왔고, 1층으로 내려와 건물의 출구로 나오는 순간 빗물과 눈이 마주쳤고, 자료실에 우산을 놓고 왔다는 게 떠올라서 다시 출입구에 학생증을 찍고 5층으로 올라갔고, 사서가 "5층 문은 잠겼다"고 말하는 순간 사서 손에 들린 내 투명 비닐 우산이 눈에 들어왔고, 내가 "우산을" 하고 말하는 순간 사서는 웃으면서 내게 우산을 건네줬고, 나는 웃으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고, 목 아래는 또 팽팽해졌고, '이젠 정말 집으로 가야지' 하면서 1층으로 내려와 건물을 나왔고, 비는 보슬보슬 내렸고, 오후 내내 고민하던 저녁 메뉴에 대해서 생각했고, 토마토 스파게티로 결정을 함과 동시에 입에서 퍼지는 토마토맛을 느끼면서, 연못을 지나고, 잔디밭을 지나고, 의릉을 지나고, 공원을 지나고, 쓰레기 통을 지나고, 이리 카페를 지나고, 트럭 옆을 지나고, 만물 슈퍼를 지나고, 소리가 나쁜 대문을 지나고, 반쯤 열려있는 옆집 현관을 지나 집까지 왔네.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고 홍삼을 먹고 비타민을 먹어도 머리가 아파요. 수강신청 바구니를 봤더니 더 머리가 아프고, 지난 학기 학점을 봤더니 또, 더 머리가 아프고, 신청한 수업들의 담당 교수 이름을 보니까 또, 또, 더 머리가 아프고. 학교 솔직히 다니기 싫은데요, 이번엔 그냥 좆까라는 심정으로 다닐래요.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워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매실청에 얼음이랑 냉수를 넣고 마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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