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글 쓰는 걸 멈추면 현실을 인식하는 기능에 에러가 생긴다. 보름 정도 메모를 거의 안 하고 살았다. 하루에 몇 페이지씩 싸지르던 4월에 비하면 소화 불량에 가까웠던 날들.
아무 것도 안 싸지르면 쓸데없는 기억들이 불규칙하게 튀어나온다. 구석탱이에 처박혀 있던 잔챙이들이 중요한 기억 코스프레를 한다. 기억도 똥처럼 주기적으로 싸질러줘야 그나마 질서 유지가 된다.
지난주부터 델리스파이스 4집을 계속 듣고 있다. 특히 ‘동병상련‘을 자주 듣는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병신‘이라는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던 친한 친구가 있었다. 병신과 나는 음악 취향이 비슷했다. 병신과 나는 둘 다 그림을 그렸고 둘 다 만화책을 좋아했으며 둘 다 사회에 적응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자의식 과잉에 중2력이 충만했던 시기였기에 쓸 데 없는 걸로 자주 다투기도 했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시절 '친구'라고 부를만한 인간은 병신 단 한 명 뿐이었다.
스무 살이 넘고 병신과 나는 다른 노선을 타기 시작했다. 병신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적극적인 이십대를 보내기 시작했고 스물두 살 쯤에는 상담을 다녔다. 그해 여름에 만난 병신은 언뜻만 봐도 여유가 느껴지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 여유가 풍족한 경제적 환경, 가족들의 따뜻한 격려에서 나온 거라는 사실에 부러워한 적도 있었다. 병신은 곧 유학을 갔고, 지금은 커다란 공모전에서 입상도 하면서 잘 살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잘 살고 있는 병신을 보면 뿌듯하다. 현실을 잘 인식하고 현명하게 지내는 게 좋아 보인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쓸쓸하다. 전혀 발전이 없는 내가 잘못된 거라는 걸 알고, 쓸쓸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찌질하다는 걸 아는데 어쩔 수가 없다. 예전처럼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게 쓸쓸하다.
'동병상련'을 듣는 5분 동안에는 병신 생각만 하는 것 같다.
병신과 연락을 안 한지 오래 됐다. 병신은 내가 연락 하는 걸 귀찮아하는 인간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히키코모리 기질 다분한 것도 잘 알아서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을 때면 보통 욕 몇 마디 던지고 넘긴다. 그런데 이번 주기는 너무 길었기에 얘도 날 포기할 것만 같다. 그러면 분명 더 쓸쓸해지겠지. 이번에는 먼저 연락을 해야겠다.
블로그를 대화 상대 삼아 지내는 터라 배설욕은 어느 정도 충족이 되는데, 주고 받는 대화는 힘들다. 가끔 뭔가를 사러 나갈 때면 말도 더듬는다. 혼잣말을 다시 시작해야지. 그리고 제발 좋아하는 애들한테 연락도 하고.
이렇게 뻘생각 정리하는 건 좋은데, 이것조차 어려워서 몇 번이고 키보드를 놓을 때가 많다. 고작 보름 정도 머리를 비우고 살았을 뿐인데 단순한 생각을 나열하는 것조차 어렵다. 계속 말이 꼬이고 내용도 꼬여서 쓰다 말고, 쓰다 말고를 반복한다. 문장이 아닌 낱말로 던져놓은 후에 겨우겨우 박음질해서 문장으로 만드는 식. 딱히 글을 업으로 삼을 인간도 아닌데 왜 이런 부분에서조차 스트레스를 받는 걸까, 하면서 자책이 습관화된 나에 대해 자책도 한다.
내 서툰 글쓰기의 목적은 성불이다. 과거에 대한 성불. 좀체 멀쩡히 있지 못하는 내 감정들이 언젠간 깨끗이 성불을 마쳐 단단해지길 바랄뿐이다.
정리를 위해 숨은 기억들을 들춰내고 빤히 들여다볼 때면 온 몸의 감각이 사건의 시점으로 돌아간다. 아플 때도 있고 구역질이 날 때도 있다. 그래도 쓰고 나면 확실히 후련해진다. 아직 성불할 거리가 많다. 그러니까 겁내지 말고, 결국엔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될 거라는 생각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쭉쭉 써내려 가면 되는 거다.
그러니까, 이 글은 기억 정리를 다시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다짐하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