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데 잠이 안 와서 원피스를 틀어놓고 있다 그러고 보니까 10년 넘게 보고 있구나 처음에 보기 시작했을 땐 쵸파보다도 어렸는데 지금은 한참 많다 그래도 원피스는 나이 많은 캐릭터가 비교적 많아서 보는 도중에 현자타임 오는 경우는 적다 헌터X헌터 같은 거 볼 때면 13살 짜리 키르아 보면서 멋지다고 생각해서 뭔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얼굴이 화끈해지곤 했다 그래도 나중에 린과 함께 천하 페도의 길을 걷는 셋쇼마루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깐 다행이야 어찌됐든 원피스는 지금도 주요인물 중에서 언니, 오빠 나이인 사람들이 많아서 더 좋다 처음에 루피 나이 넘겼을 때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에이스 죽을 땐 나랑 나이 똑같은 애가 죽어서 또 기분이 이상했다 으엉ㅇ 이젠 까마득한 동생들이야 그래도 아직 로우도 아슬아슬하게 오빠고 로빈도 언니야 나중에 서른 먹으면 샹크스를 기준 삼아 아직 한참 오빠인 캐릭터가 있다고 생각해야지 그리고 또 오십이 넘으면 레일리를 생각하면서 아직 까마득한 오빠 혹은 삼촌이 있다고 기분 좋게 생각할 거야 늘 느끼는 거지만 나랑 같이 크는 만화가 있다는 건 참 행운인데 중간중간에 현실 시간 생각하면서 오는 휑함 같은 건 조금 싫다 같이 크지만 나이는 나만 먹는 그 기분은 왠지 쓸쓸하니까 원피스가 완결날 때쯤이면 난 일을 하고 있을까 졸업은 했겠지 아마도 그리고 그때도 콧물이랑 눈물 흘리면서 내 속에 있는, 한없이 부족한 긍정긍정 에너지와 소년소년함을 죄다 쏟아부어 열렬히 순수를 위한 발악을 할 거야 공백의 역사도 다 풀리고 이상한 모양의 정의도 싸그리 박살나고 다들 에이스처럼 자기 목적 혹은 알맹이 혹은 본질을 찾고 그런 뒤에 그 속 사람들이 행복하게 고기 뜯으면서 파티 하는 모습 보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루피는 해적왕이 될까 되겠지 될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에이스의 인생은 실존 그 자체다 생각하니까 또 슬프면서 좋다 태어나도 괜찮았을까, 하는 질문과 자신을 최초 에너지원으로 삼아 답을 찾는 과정 그리고 그 끝에 얻어낸 나름대로의 답과 본질 몬스터보다 더 실존주의 냄새가 풍기는 만화 오 곧 옆 화면에선 에넬이 등장할 것 같다 노랜드 이야기 나오면 왠지 벅차올라 그나저나 샤봉디 제도 이후로 원피스가 재미있어져서 정말 다행이다 원피스가 없었다면 혹은 원피스에 재미를 못 붙여서 안 보고 살았다면 내 생활은 한층 더 피폐했을 거야 그러니까 오다한테 고마워해야지 내가 보는 모든 만화들의 끝은 꼭 보고 싶다 헌터X헌터도 꼭 끝까지 나왔으면 좋겠고 나나도 끝까지 나왔으면 좋겠다 작가님이 어서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이미 슬퍼진 인간들이지만 나나 속 인물들이 조금이라도 마음의 안정을 찾으면 나도 기분이 좋을 것 같아 렌 없는 반쪽짜리 나나도 조금만 더 행복해지고, 하치는 뭐 알아서 괜찮게 살아낼 것 같으니 패스하고, 야스도 뮤와 함께하든 누구와 함께하든 온전한 형태의 관계를 만들고, 신도 레이라도 빨간 실의 반대편을 못 찾아가더라도 조금만 더 행복해지고 그렇게 마음아픈 사람들이 사라지면 좋겠다 또 완결 못 본 게 뭐가 있더라 그래 십이국기 원작 속 타이키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곳에서 안정도 찾고, 함께 있어도 되는 사람을 찾았으면 좋겠다 모든 만화가 강철의 연금술사처럼 하하호호 웃으면서 끝날 수는 없겠지만 내 십 몇 년을 함께한 인물들은 마음 아프지 않은 끝을 맺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멘탈이 크로와상 껍질보다도 쉽게 부서지는 나는 분명 슬퍼질 거야 오 정말 오랜만에 의식의 흐름으로 써재낀 십덕글이 탄생했다 원피스 계속 틀어놓고 잠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