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이 남아나질 못해 다시 기록을 한다.
월요일에는 전공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을 해 버렸다. 실천력이 넘쳐나는 전공 선생님은 만들지 않아도 될 자리를 만들었다. 나는 불편한 자리에 앉아서 불편한 이야기들을 꾸역꾸역 뱉어냈다. 나는 조용히 살고 싶은데.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글을 쓰고 싶은데. 그 자리에서의 내 모습은 자의식 과잉에 글쓰기에 취해 있는 뜨내기 같았다. 뜨내기는 맞지만 다른 건 아닌 걸.
계속해서 자학을 하게 된다. 그 자학 탓인지 오늘 오전 수업을 날렸다. 왜 멘탈이 무너지면 생활에 지장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글쓰기 수업도 가지 않으려고 했다. 누워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가 수업 시작하기 50분 전, 그래도 움직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급하게 세수를 하고 모자를 눌러썼다. 돕바에 팔을 쑤셔넣고 가방을 들었다.
결과적으로 수업에 빠지지 않고 간 건 잘 한 짓이었다. 오늘은 시를 한 편 씩 준비해 가서 읽는 날이었다. 날씨가 좋아서 야외수업을 했다. 학교 까페 앞 야외 테라스. 바람이 불었고 건물 옆 공사판에서는 잡음이 들려왔다. 선생님의 말들은 바람과 잡음에 적당히 가려졌다. 적당히 들리지 않았고 내 기분은 적당히 좋았다.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연출과 신입생들인데, 적당히 재미있고 에너지틱하다. 혼자서만 학번, 학년, 과가 다른 나는 조용히 찌그러져서 수업을 듣는다. 웃음 포인트를 마주할 때마다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사진관 웹하드에 들어가 업로드 목록을 확인했다. 내 사진은 안 올라와 있다. 이번에도 카메라 조작을 잘못해서 필름의 절반을 날렸다. 날린 건 알지만 그래도 결과물이 궁금하다. 빨리 올라왔으면.
복블리에게도 상담을 요청했다. 내가 유일하게 신뢰하는 선생님. 유일하게 나의 글쓰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선생님. 나는 배설욕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초짜다. 이번 학기에 물고 늘어질 소설을 한 편 추천 받고 싶다.
읽은 희곡을 정리해야 한다. 쪽글도 몇 편 읽어야 한다. 오늘은 이 두 가지만 하면 된다. 사진을 확인하고 시작할 생각인데 사진은 아직도 안 올라오고 있고. 나는 3분에 한 번씩 웹하드를 확인한다. 5-6시 쯤 올려준댔는데 6시까지는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겠지.
그냥 허비할 바에는 뻘글이나 싸지르는 게 낫겠다. 블로그를 만든지 거의 1년이 되어간다. 게시물은 300개를 넘겼는데, 이 뻘글들 덕에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어쩌면 나는 평생을 혼자만의 방 안에서 폐쇄적인 글쓰기나 하며 허비할지 모른다. 남들이 보기 싫어하는 우울한 글이나 싸지르면서. 그런데 이야기에 대한 욕구는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다. 자폐적이고 자위에 가까운 글쓰기랑은 종류가 다르지 않을까.
아직도 어제 한 면담에 휘둘리고 있다. 도마뱀처럼 꼬리 자르기의 대가가 되고 싶다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하루치의 우울은 하루로 끝내야 한다. 어제 하루치의 우울을 오늘로 가져온 건 내 잘못이다. 사진은 아직 안 올라오고 있다. 6시까지 11분이 남았다. 11분 만에 올라오면 좋겠다.
요즘 빛 관찰 일지를 쓰고 있다. 빛에 미쳐서 보이는 모든게 빛으로 해석되어 보이던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매일 정물화를 그릴 때였다. 입시미술 따위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건데, 모태 진지병자인 나는 내가 무슨 모네라도 된 양 빛을 분석하곤 했다. 그땐 그게 좋은 건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때의 나로 돌아가 뒷통수를 후려치고 싶다. 빛 관찰 일지를 쓰니깐 그때가 떠오른다.
매번 생각하는 건데, 내 인생의 시차는 늘 어긋나 있다. 계절도 어긋나 있다. 반팔 티셔츠 한 장 밖에 가진 게 없을 때 겨울이 오고, 오리털 파카만이 옷걸이에 걸려 있을 때 여름이 온다. 그러면 나는 더워서 울고, 추워서 울고.
봄이 싫다. 인생에서 제일 우울했던 시기를 꼽을 때 다섯 손가락 안에 꼭 들어가는 스무 살의 봄. 눅눅한 군자동 자취방 안에서 창 밖 소리들을 피하려 이불을 뒤집어 쓰던 때. 때마침 에픽하이의 새 앨범이 나왔었고, '한 순간을 못 가 미친다 비 내리는 사월아'라는 가사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쓰다 보니깐 또 찐따 같은 우울글만 쓰고 있네.
6시 까지 1분이 남았는데 웹하드에는 내 사진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 오늘 안에는 올라오는 걸까. 빨리 사진을 보고 싶다.
6시. 사진은 아직까지 안 올라오고 있고. 나는 계속해서 뻘글을 이어가고 있다. 싸지를 거리도 안 떠오르는데. 라네프스카야 일가를 보면 2년 전의 우리 집이 떠오르는데, 이런 건 수업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입을 닫고 있을 거다. 예술이라는 걸 학교에서 공부하다 보면 뱉어야 할 말과 뱉지 않아도 될 말 사이에서 고민하는 순간이 생긴다. 필연적으로. 나를 보여주기 싫은데 보여주지 않으면 진행이 안 되는 경우들. 그럴 때면 나는 또 자학을 한다. 말하기 싫어하는 내가 싫어져서.
6시가 된지 8분이 지났고, 사진은 아직 안 올라와고 있다. 1년 전 같은 사진관에 갔을 때에는 2시간만에 사진이 올라왔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느린지 모르겠다.
내일은 복블리 수업 2개에, 토론 수업 하나. 지난 주 금요일 수업을 죄다 빠졌었는데 내일 진료확인서를 갖고 구걸을 해야 한다. 이젠 이런 출석 구걸은 익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