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신입생들이 입학한다. 나는 나보다 늦게 학교에 입학하는, '후배'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 작년에도 친구 한 명이 신입생으로 들어온다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고, 올해에도 내가 좋아하는 동생 한 명이 입학한다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보다 몇 학번 높은 동생과 별 생각 없이 이야기를 하다가 낯익은 이름을 듣고선 놀랐다. 진짜로, 욕이 나올 정도로 놀랐다.
내가 입학 시험에 떨어진 해였다. 1차 시험에는 지우개 없이 색연필과 모나미 볼팬을 섞어 인물 군상을 그리는 문제가 나왔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아마 안경 쓴 남자의 안경테를 그리고 있을 때 쯤이었을 거다. 옆에서 벅벅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우개를 종이에 문지르는 소리였다. 나는 옆 자리에 앉은 아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때 지우개를 쓰는 건 부정행위였으니깐. 뭐 이렇게 부정행위를 당당하게 하지? 하는 생각으로 쳐다봤을 거다, 아마. 그 아이도 나를 쳐다봤다. 우리는 아이컨텍을 했다. 아이컨텍이 끝난 후에는 그 아이의 그림을 봤다. 저 정도면 1차에 떨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시험관에게 굳이 부정행위에 대한 고발을 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나에게 피해만 안 오면 부조리를 용인할 수 있는 멍청한 인간이었다.
1차 시험에 붙고, 2차 시험을 치러 갔을 때, 그 아이를 다시 만났다. 내 예상과 달리, 그 아이는 1차 시험에 합격을 한 상태였다. 당시 시험 일정에 조별 토론이라는 게 있었고, 그 아이와 나는 같은 조로 편성돼 있었다. 나는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우리에겐 연습 토론 시간과 실전 토론 시간이 주어져 있었다. 연습 시간에는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며 실전에서 할 이야기들을 정리했다. 스크립트를 짜서 대사도 정했다. 주제는 '게임 중독'에 대한 거였고, 나는 '셧다운제'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교수들 앞에서 실전 토론을 할 때였다. 우리는 이전에 정리한 스크립트대로 대사를 쳤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어갈 쯤이었다. 그 아이는 갑자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고,(정말로 땡그랗게 뜨고, 미소까지 머금으며) 곧이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셧다운제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겠네요."하고. 나는 당황을 했다. 본 시험에 앞서, 모두가 대사를 합의하고 들어간 거였는데. 가만히 앉아서 내 몫을 도둑맞다니. 멘탈이 나간 나는 횡설수설만 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같이 시험을 쳤던 언니에게 하소연을 했다. "언니, 저 년 미친년이에요." 내가 뒤에서 하소연을 하는 사이 그 아이는 웃으면서 조원들에게 말했다. "아, 우리 다 같이 붙었으면 좋겠다! 그쵸?" 그때 그 표정과 대사를 잊을 수 없다.
그 뒤에 최종 불합격 통보를 받고 나는 한동안 멘탈이 나가 있었다. 중요한 시험에 떨어졌다는 사실도 문제였지만, 세상에 그렇게 악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나, 하는 생각에 괴로워한 것도 있었다. 내 20년 남짓의 인생에 손꼽히는 썅년이었으니깐.
그 썅년(이자 소시오패스)이 이번에 후배로 들어온다. 시간이 많이 지났고, 입시도 이젠 오래전 일이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은 좋지 않다. 아니, 최악이다. 시험을 떠나서, 나를 병신 호구로 본 거니깐.
사람들에게 그 소시오패스를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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