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머리가 아파

2015. 12. 19. 12:35 from 하루 낱말

거제도 시골집 편백나무 숲에 서서 모네를 생각했다. 그림에 정을 뗀지 한참이나 됐는데도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모네라니 신기한 일이었다. 차라리 저녁밥 메뉴나 눈이 아프다는 생각 같은 게 떠올랐다면 더 자연스러웠을 텐데, 모네라는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매주 책 네 권을 집에 가져다주는, 학습지라도 해야할지 모를 이상한 걸 신청했었다. 일주일이 지나면 담당자는 책을 도로 가져가고 새로운 책을 가져다 줬다. 개중에는 그림책도 종종 끼어왔는데 <모네의 정원에서>라는 책이 그 중 하나였다. 나는 그 책을 열 번 정도 읽었다. 모네는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열정은 넘치는데 가족들을 괴롭게 만드는 멍청한 아빠였다. 죽기 직전에는 시력을 잃었다. 시력을 잃으면서도 그림을 그렸는데 초등학생의 나는 왜 그걸 보고 울었는지 모르겠다. 모네라는 사람이 떠오른 이후에는 모네의 볏짚 연작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때 눈앞에 있던 황토색 잡목 숲이 그 그림과 닮아서였을 거다. 그 후에도 계속 모네가 떠올랐다. BBC에서 만든 드라마 다큐 속 모네도 떠올랐다. 극 중 모네는 베컴과 즐라탄을 섞어놓은 것처럼 생겼었다. 나는 그 모네가 좋아서 모네가 다시 좋아졌다. 모네보단 르누아르를 좋아하지만 가깝게 느껴지는 건 모네 쪽이다. 로트렉을 제일 좋아하지만 가깝게 느껴지는 건 역시 모네 쪽이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랫동안 함께한 화가를 뽑자면 모네이긴 할 거다. 내가 몇 달간 일했던 곳에서 이번에는 모네에 관련된 전시회를 한다. 되게 병신 같은 회사에서 기획한 거라 이미 불쌍해진 모네가 눈에 보인다. 모네는 멍청한 아빠에 외골수 같은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부관참시는 못 참아.  


나는 그런데 왜 모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요즘 명사가 기억이 안 난다. 기억도 안 나고, 적절하게 지칭하는 게 잘 안 된다. 그래서 '~것'이라든가 '~게' 또는 '같은'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바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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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ASIK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