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217 종강

2015. 12. 17. 17:10 from 하루 낱말

 연극사 토론 기말고사를 쳤다. 무기력해서 공부도 안 하고 있었다. 읽었던 것들로 시험 보는 거니깐 문제 받으면 기억 나겠지. 하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다. 


 아, 리어왕이랑 리처드 3세는 읽었구나. 셰익스피어를 공부하는 두 주 동안 학교 수업 전체를 빠졌고, 리어왕과 리처드 3세를 새로 읽어야만 했다. 


 머릿속에서 낱말들이 둥둥 떠 다닌다. 작년 글쓰기 수업 때에도 리어왕을 읽었다. 수업 제목이 '소설 이전의 왕'이었나. 선생은 연극원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 연출과 언니 한 명, 오빠 한 명, 친구 한 명 그리고 예술경영과 동생 한 명. 이렇게 있었던 것 같다. 선생은 나에게 먼저 물었다. "어떻게 읽으셨나요?"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냥 "어... 제가 읽은 희곡 중에서 가장 감정의 낙차가 큰 희곡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선생은 되물었다. "셰익스피어 희곡 중에서는 어떤 희곡을 읽어 보셨나요?" 나는 또 멍청하게 대답했다. "어... 햄릿이랑 맥베스랑 리처드 3세랑 한 여름밤의 꿈이요. 그런데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다 인물관계도가 복잡하고 내용도 비슷비슷해서 죄다 섞여서 기억이 나요. 햄릿이 리어 같고 리어가 리처드 같고 그래요." 선생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줬고, '감정의 낙차'에 주목을 했다. 그리고 그 맥락으로 설명을 해줬다. 벼락치기로 읽어간 터라 이해도 잘 안되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때 적었던 필기를 꺼내들고 다시 읽은 오늘. 절반은 이해가 됐다. 


 리어랑 글로스터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가 지웠다. 아직도 정리가 안된다. 이 상태로 시험을 어떻게 쳤나 모르겠다. 개소리를 장황하게도 썼다. 작은 글씨로 커다란 종이 한 바닥을 다 채웠는데, 다 개소리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험을 끝내고 나와 다른 친구 두 명이 남았을 때 선생님은 "이번 학기에 제일 열심히 고민했던 친구들만 남아있네."라고 말했다. 고민이야 열심히 했는데, 답안지는 병신같이 썼어요. 죄송해요, 선생님. 아무리 생각해도 리어는 존나 불쌍하고 군도 결말은 병신 같아요. 셰익스피어는 여혐 종자 같고 실러는 예수 후빨러 같아요. 


 어찌됐든 학기가 끝났다. 학기말까지 학교를 나갔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학기는 성공한 학기다. 비록 F 확정 과목이 두 과목이나 되지만, 두 번의 심각한 우울 삽화를 겪고서 출석부를 거지같이 만들어 놨지만, 그래도 중간고사를 보고 기말고사를 쳤으니깐. 마지막 수업에 참석했으니깐. 이것만으로도 나한텐 큰 발전이다. 예술적 글쓰기 과제를 안 낸 것만 못한 퀄리티로 냈지만, 어쩌겠어. 선생님이 참담하게 코멘트 해 주면 좋겠다. 제대로 고쳐쓰게. 


 다음 학기에는 더 잘 다니고 싶다. 계속해서 열심히 치료 받고서 일상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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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ASIK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