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소리와 심장소리 때문에 비상약을 털어넣고 하루종일 잠을 잤다. 중간에 잠시 깨서 기말고사를 친 것을 제외하고는 계속 잠만 잤다.
또 가위를 눌렸다. 2주 내내 눌리고 있어서 무섭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움직일 수 없는 느낌이 싫었고 또렷이 들리는 말 소리가 싫었다. 오늘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고 옆으로 누워있는 내 몸을 더듬는 느낌이 들었다. 꿈에서조차 남자가 싫었다.
아침에는 일본어 시험이 있다. 회화 시험이라 스크립트를 짜고 외워가야 한다. 원래는 짝을 지어서 하는 건데 나는 짝이 없어서 그냥 혼자서 한다. 편해서 좋다. 좋아하는 영화와 애니메이션과 소설 이야기를 할 거다. 상실의 시대를 가져가서 '코노'를 써먹을 계획이다. 미키 사토시 이야기도 할 거다. "니혼노 에이가 칸토쿠노 나카데 미키 사토시가 이찌방 스키데쓰"
지금은 쇳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기분이 좋다.
교양 글쓰기 과제가 남았다. 원래는 두 개만 제출하면 되는 건데, 나는 지난 과제를 너무 심하게 늦게 냈으므로 하나를 더 제출해야 한다. 지구종말은 뒤늦게 생각난 전자렌지 이야기로 어떻게든 써냈고, 퀴르발 남작의 성은 처음부터 별 문제 없이 술술 써냈는데, 이번 애도에 대한 이야기는 막힌다. 아니, 막히긴 막히지만 그냥 막히는 것과는 조금 다르고. 내 이야기를 쓰려고 하니 손가락이 제동이 걸린다. 애도가 쏙 빠져버렸던 8년 전 일을 어떤 구성으로 써 내야 할지 모르겠다. A4 2-3페이지 정도의 분량제한이 있어서 길게도 못 쓰고. 며칠 전 고민하다가 첫 문장을 떠올렸는데 이걸 그대로 쓸 지 안 쓸 지는 모르겠다.
달팽이를 떠나 보낸지 8년이 지났다. 그러나 달팽이는 떠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깐 내 시점으로 솔직히 써 내려가는 게 좋겠다. 아주 만약에 교수가 "이거 수라씨 실화인가요?"라고 물어본다면 그냥 "네."라고 대답해야지.
이젠 내 트라우마에 대해서 가벼운 마음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식이라면 내년 쯤에는 "나 고등학생 때 어떤 아저씨가 내 입에 혀 넣고 가슴 만지고 단추 당기고 사타구니 만졌다!"라고도 말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물론 거기에서 파생된 아빠의 이야기는 어려울 거다. 지금도 어렵다.
이번 애도가 끝났을 때, 민우에게 행해주었던 개구리 접기 의식을 나에게 행해 주었을 때. 조금 더 편안한 모습으로 거울을 보고 싶다. 웬만하면 전신 거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