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917

2015. 9. 17. 19:54 from 하루 낱말

 글을 자주 못 썼다. 교양 수업에서 페르난도 페소아의 <불안의 서> 일부를 읽었다. 교수는 이 책을 읽고 다시 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뭔가 정신 없고 정서가 불안해 보이는 이상한 매력의 교수인데, 그 교수의 말을 듣고서 잊고 있던 내 기록들이 생각났다. 메모장에 쪽글들이 있긴 하지만 일단 밀린 생활들을 역순으로 싸질러봐야겠다. 


 어제는 학교 축제였다. 옆에 있던 동생의 말을 빌리자면 '김해 장유면 볏짚 태우기 축제보다 재미 없는 축제'였다. 연기과 주점에서 술을 조금 마시다가 학교 앞 빈대떡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글을 안 쓰고 지낸 동안 같은 학년으로 다니는 후배들이랑 꽤 친해져서 술자리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다. 


 이틀 전에는 병원에 갔다. 며칠 전부터 공황 발작 증상들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고, 범불안 증상들은 하루종일 나타났다.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빨리 뛰었고 배나 옆구리는 자기가 심장이라고 착각하는 것처럼 팔딱팔딱 뛰었다. 잠에 들 수도, 멍을 때릴 수도 없어서 계속 발만 떨었다. 공황 발작에 가까워질 때면 머리는 짧고 튼튼한 띠에 갇힌 것처럼 쪼여왔다. 귀에서는 쇠젓가락 두개를 비비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1교시 아침 수업을 빼고 병원에 갔다. 몇 달만에 가는 거라 조금 어색했다. 의사는 내 말을 잘 들어주지 않았다. 내가 치료를 꾸준히 안 받고 중간에 그만둬서 답답하기도 했을 거다. 그래도 조금만 친절하게 들어주지. 아쉽긴 했다. 왠지 병원에만 가면 더 횡설수설하게 되고 내가 '을'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다. A-B-C 단계로 생각 정리하기를 하다가 토요일에 일어난 페북 쌍욕 사건에 대해서 말하게 됐고, 이어서 열 여덟 1월에 겪은 강제추행 사건, 그리고 그때의 아빠가 했던 말들까지 다 말하게 됐다. 의사는 별 반응 없이 해마와 편도에 대해서 설명해줬고 앞으로는 꾸준히 나오라고 말했다. 조형 선생에게 제출하기 위해 진료 영수증을 받았고, 병원 근처에서 적당히 시간을 떼우기 위해 근처에 사는 아는 동생에게 괜찮은 카페를 물었다. 동생은 여러 카페를 추천해줬고 나는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북카페로 들어갔다. 좌석마다 이름이 정해져 있었고 내가 앉은 좌석의 이름은 '헤밍웨이 4'였다. 헤밍웨이를 좋아하는지라 뭔가 기분이 좋았다. '4'라는 숫자도 헤밍웨이와 어울렸다. 순간 엽총과 헤밍웨이의 가계도가 떠올랐다. 헤밍웨이가 어렸을 때 입었던 드레스도 떠올랐다. 책 구경을 하다가 유진 오닐의 '밤으로부터의 긴 여로'를 집어들었다. '인간 실격'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는 어둠어둠한 책이라고 알고 있는데, 읽을 자신은 없었고 그냥 몇 페이지 정도만 훑어보고 싶었다. 앞에 두 바닥 정도를 읽은 후 덮어버리고 내가 가져 온 김혜순의 시집을 읽었다.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약기운에 멍해져서 그냥 창 밖만 바라봤다. 맞은 편 1층에는 '선화 슈퍼'라는 구멍 가게가 있었고 그 앞으로는 폐지를 가득 실은 수레를 끄는 할머니, 지팡이를 짚고 느릿느릿 걷는 할아버지,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는 젊은 남자, 검정색의 번쩍번쩍한 자동차 등이 지나다녔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마침 카페 안에서 드립 커피 수업이 진행중이었어서 가게 주인은 아이스 드립커피를 나에게 줬다. 2000원 더 비싼 건데 싸게 마셔서 기분이 좋았다. 회사원 무리들이 들어오고 까페 내부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하자 나는 밖으로 나왔다. 273 버스를 타고, 147 버스로 환승해서 학교로 왔다. 버스 안에서는 계속 쇠젓가락 비비는 소리가 들렸다. 약빨이 귀 까지는 가지 않았나보다. 학교에 도착해서는 조용히 앉아서 연극사 이론 수업을 들었다. 교수 목소리보다 쇠젓가락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삼일 전에는 거의 잠만 잤다. 나머지 시간에는 네이버에 '사이버 모욕죄', '사이버 명예훼손', '사이버 모욕죄 합의금' 등등을 검색하며 보냈다. 제일 많이 입에 올린 단어는 '인실좆'이었을 거다. 양아치 같은 놈을 무릎 꿇리고 그에 합당한 벌금을 받아낼 거란 생각에 약간은 통쾌했다.


 사일 전에는 국립극단에서 '조치원 해문이'라는 연극을 봤다. 연극을 다 보고 난 후에는 시민연대에서 일하는 삼촌의 사무실에 갔다. 동생, 코끼리와 같이 갔다. 오랜만에 만난 삼촌은 먹을 것들을 사줬고 일에 시달려서인지 이전에 자주 퍼붓던 '걱정을 가장한 언어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나는 조용히 갈매기살과 양념갈비와 된장찌개와 막국수를 얻어먹고 곧 군대에 갈 친척 동생에게 힘내라는 말을 건넸다. 


 일단은 역순으로 정리하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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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ASIK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