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첫날, 새로 배정받은 자리를 정리하다가 서랍 속에서 만화책 두 권을 발견했다. 19세 만화책이었고 제목은 기억이 안 난다. 주인공은 꽃미남 중학생과 예쁜 여선생, 이렇게 두 명이었다. 둘은 동거를 하는 사이였고 틈만 나면 옷을 벗었다. 공원에서도 벗었고 학교 도서관에서도 벗었다. 여자의 허리는 팔뚝만큼 얇았고 가슴은 거의 축구공만 했으며 남자의 배는 중학생이라는 걸 까먹게 할 정도로 탄탄했다. 난 당장 옆 자리 친구에게 공유해줬다. 앞 자리 친구한테도 공유해줬고, 앞옆자리 친구한테도 공유해줬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 그 만화책을 돌려 읽으며 각종 드립을 생산해냈다. 아마 몇 주 동안은 그걸 갖고 재미있게 놀았을 거다. 그 후로도 누군가가 가져온 19세 만화책을 아무렇지 않게 돌려봤다. 교실 텔레비젼으로 19세 영화 예고편을 보면서 놀기도 했다.
2년 전 가을, 오랜만에 집에 내려간 김에 고등학교 친구 두 명과 밥을 먹었다. 여자애 한 명, 남자애 한 명이었는데 둘 다 섹스 이야기만 했다. 누구랑 어떻게 했고, 두 명이랑 할 때는 어땠으며, SM 플레이는 어땠다, 등등. 처음엔 내 앞에서 이런 말을 해도 되나, 하면서 말을 아끼더니 내가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즐겨 듣는다는 걸 기억하고선 질펀하게 썰을 풀기 시작했다. 처음엔 오히려 재미있었다. 그런데 들으면 들을 수록 기가 빨렸다. 이야기의 주제나 디테일한 상황 묘사 때문이 아니라 그 둘이 주고 받는 묘한 기류 때문에 기가 빨렸다. 그래도 둘 다 내 친구들인데, 같이 왁자지껄하게 놀던 애들인데. 여자든 남자든 그냥 성별을 떠난 '친구'들인데.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몸을 살짝 터치하는 것도 이상했고, 눈빛을 주고 받는 것도 이상했다. 우리는 밥을 다 먹고 잠시 걷다가 헤어졌다. 나는 우리집 방향으로 걸어갔고, 그 둘은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왠지 그 둘은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갔을 것만 같았다.
우리 관계의 90% 이상을 이루고 있던 '친구'라는 성분이 다른 성분으로 바뀌어버린 것만 같았다. 단순히 나이에 따른 물리적 변화가 아닌, 그 이상의 화학적 변화였다. 뭔가 속이 휑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후 검정치마의 '강아지'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