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여관에는 의외로 사람이 많다. 이전 집 앞 여관에도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집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혹은 갈 집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 밤이 많나보다.
룸쌀롱이라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룸쌀롱에 가 봐야 한다, 나는 여관이라는 공간을 알기 위해 여관에 가서 여관바리를 만났다, 고 말하던 젊은 교수가 생각난다.
집이 있어도 잠 잘 곳은 없다. '곳'은 있어도 '잠'은 없다. 48시간 중 수면 시간은 5시간도 안 된다. 전날 밤을 새고서 몸이 잠들어도 정신은 또렷하다. 그 덕에 늘어나는 건 헛소리 뿐.
4년 전, 5년 전에는 밤새서 무리하는 걸 즐겼다. 에너젠을 하루에 세 병 마신 날도 있었다. 무리해서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게 멋진 건줄 알았다. 사실 작년 봄까지도 그랬다. 잠 줄여 과제를 끝마쳤을 때 이상한 희열이 느껴졌고, 그 기분을 계속 만끽하고 싶었다. 그땐 그게 미래를 갉아먹는 짓인 줄은 전혀 몰랐지. 미래에 빚지는 건 내 특기다.
이런 날에는 걸어야 한다.
한때의 유일한 취미는 산책이었다. 걷고 싶어서 걷다 보니 걸어야 해서 걷고 있었다. 소화는 너무 빨리 됐고 삼각김밥과 샤니 초코롤 빵과 에너지바를 번갈아가며 삼켰다. 손은 바쁘게 삼각김밥과 빵과 에너지바를 입 안에 쑤셔넣었고, 입은 바쁘게 우물거렸고, 오른 발과 왼 발은 바쁘게 교대했다. 독립문을 지나면 서울역사박물관이 나왔고, 서울역사박물관을 지나면 광화문이 나왔다. 광화문을 지나면 안국이 나왔고, 안국을 지나면 정독 도서관이 나왔다. 밟히는 생각이 많아, 계속해서 다른 뭔가를 밟았다.
"우리 사고 안에는 불가능한 것과 가능한 것의 좌표가 있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 좌표가 흔들리게 되고 그때 윤리적이라는 말을 쓸 수 있어요. 이 윤리는 정치·사회·문화적인 것을 근저에서 흔드는 근본적인 것이죠."
벽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 방 벽지에는 세로로 된 줄무늬가 있는데, 계속 보고 있자면 입체가 되어 우뚝 솟는 것만 같다. 손으로 잡아뜯으면 뜯어질 것도 같고. 언젠간 손으로 잡을 수 있다면 예쁜 소녀의 머리칼처럼 곱게 곱게 땋아줘야지.
해와 달이 반대가 되는 날들이 싫다. 아무리 태어나기도 전부터 골골거렸다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다. 늘 하는 생각인데, 몸뚱아리 리퍼 받고 싶다.
"아비가 누더기를 걸치면
자식은 모르는 척하지만,
아비가 돈주머니를 차고 있으면
자식들은 모두 다 표자.
운명의 여신은 이름난 창녀라
구차한 사람에겐 문을 열지 않는다."
선풍기를 켜놓고 자면 죽는다는 이야기를 같은 반 아이에게 들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초등학교 3학년의 여름 밤, 선풍기를 틀어놓고 문을 닫았다.
옆 아파트의 중학생 언니는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술을 마시고서 생과 사를 결정할 사다리를 그렸다. 50:50의 확률에서 이긴 건 '사'. 그 언니의 단말마는 슈퍼 마리오 BGM과 닮았을 것 같다.
"사람이 죽은 후에도 머리나 손톱, 발톱은 다시 자라난다.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머리나 손발톱은 살아 있는 세포들이 죽은 세포를 밖으로 밀어내서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 몸의 죽은 부분들은 다시 자라나지만. 산 부분은 자라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일이다. 눈을 잃으면 다시 살아나지 않기 때문에 유리눈을 끼우거나 안대를 해야 한다. 이는 빠지면 한 번은 다시 나지만 또 한 번 빠지면 그 자리는 영원히 구멍으로 남게 된다."
"포기하지 마라. 인생 길다." 술자리에서 나를 울게 했던 선생이 한 말인데 메모장을 훑다가 발견했다. 다음에 학교에서 봤을 땐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얼굴 까먹겠다
잘 지내나
그래 당신도 고민이 많겠지만
고통 없이 성장도 없겠지 뻔한 말이지만 난 그리 믿고 산다
딛고 서는 해가 되어라
응원한다
복 마이 받어"
2013년 1월 1일
지난 가을 학교에서 봤을 때 그 선생은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몸은 괜찮니, 그렇구나. 그 후엔 허공만 쳐다봤다.
숙취 해소 음료에서 오줌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