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광주에 갔다. 나는 다시 혼자 지내는 꼴이 됐다. 같이 사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하나의 집을 공유하는 느낌으로 살고 있으니 혼자 지내는 게 맞다. 동생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여름 동안에는 동생만 보고 지냈다. 동생이 없으니깐 사람을 만나고 싶어진다.
잠수를 타는 중이다. 연락 오는 사람은 별로 없긴 한데, 그래도 잠수를 타고 있다. 보름 정도 확인하지 않은 카톡이 있고, 카톡의 빨간 숫자는 세 자리에 육박했다. 페이스북도 안 하고. 주기적으로 사람 만나는 게 싫어진다. 그런데 이제는 뭍으로 올라가야 하는 시기라는 게 느껴진다.
갑자기 추워져서 시간이 압축된 채로 빠르게 흘러간 것만 같다. 왜, 인터스텔라를 보면, 행성마다 시간을 감각하는 정도가 다르잖아. 동면에 들었다 일어났는데 세계가 터무니없이 변해버려서 적응을 못하게 되어버린 기분이다. 매 해 가을은 암울했던 것 같은데, 이번 가을은 조금이라도 괜찮으면 좋겠다.
또 휴학을 했고. 아직 휴학계를 내지는 않았지만, 교수와 면담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개강을 했음에도 학교를 가지 않으니 휴학을 한 게 맞는 거겠지. 한 학기만 쉬고 다음 학기에 바로 복학할 거다. 재수강도 몇 개 하고 그러면 서른에 졸업을 하게 될 것 같다. 전과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겠다. 전과를 할지 말지 결정하기 위해서 휴학을 하는 거니깐. 이번 가을과 겨울 내에 생각을 정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질리도록 쓰다 보면 뭔가를 결정할 수 있겠지. 사실 글로 뭔가를 이뤄낼 자신은 없다. 그렇다고 학과 커리큘럼을 따라갈 자신도 없다. 글을 써서 돈 벌 자신은 없는데, 지금 전공으로 돈 벌 자신 또한 없다. 대개의 일감은 인맥으로 들어오는 거고, 학과에서의 평판이 좋아야 일을 잘 딸 수가 있는데, 나는 자발적 아싸로 지내왔기 때문에 인맥도 없으며 학과 생활을 개차반으로 해서 평판도 엉망이다. 전공에 있어서의 실력이나 능력 같은 것도 말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멍망이고. 물론 글도 엉망. 그냥 빨리 글에 싫증이 나서 어쩔 수 없이 전공으로 돌아가 버리게 되는 게 제일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
가을을 게으르게 보낼까봐 강의를 하나 신청했다. 시집으로 유명한 출판사에서 주관하는 강의고, 강사는 유명 시인이다. 흥미 있는 수업이 두 개가 있었고 그 중 뭘 들을지 잠시 고민했는데, 돈 주고 외부에서 듣는 거니깐 학교에서 접하기 힘든 수업을 듣자, 하는 생각으로 어렵지 않게 선택을 했다. 뭐, 큰 기대는 없고, 매주 작품들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이따금 '시'라고 할 수 있는 뭔가를 써 내기만 한다면 돈이 아깝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훌륭한 아가리 파이터가 되기 위해 철학서도 꾸준히 잡아야 할 것 같다. 전체적인 계보를 한 번 훑고, 사르트르나 마르크스, 푸코, 지젝을 얕게나마 파고 싶다. 사르트르 좋아하면 중2병 취급하고, 마르크스나 지젝 좋아하면 빨갱이 취급하는 종자들이 간혹 있던데, 그런 종자들의 공격까지 튕겨내기 위해서는 더 꼼꼼하게 읽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휴학도 했으니, 일기를 자주 쓰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