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122 꼴라쥬

2016. 1. 22. 23:12 from 하루 낱말

오늘은 무사히 버텼다. 아침에는 바빠서 약을 먹지 않고 나갔다. 손이 떨리는 순간이 찾아오긴 했다. 그래도 버텼다. 잘 버틴 기념으로 조그마한 화이트 와인을 샀다. 달고 맛있다.

아무리 걸어도 겨울뿐이다. 언제나 북으로 걷는 상상만 했는데, 오늘은 남으로 걷는 상상을 했다. 끝없이 남으로 걷기. 그런데 남으로 걷다 보면 금방 바다가 나오겠구나. 북으로 걷는 상상만 한 이유가 그런 이유에서였구나. 그래도, 뭐 끝없이 남으로 걷다가 결국엔 바다 위 마저도 걸어버리는 인간이 있을 수도 있겠다. 바다 위를 걸을 때, 그때 비로소 생 곳곳에 숨어있던 행복이 쏟아져 나올지도 모를 일이고.

읽지도 않은 소설을 좋아해 본 적이 있다. 박민규의 <핑퐁>을 읽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주 못난 소년 두 명이 주인공이라는 것 만큼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둘에게 세계의 운명이 맡겨졌을 때, 그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도 알고 있다. '언 인스톨'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 또한 완독하지 않았지만 그가 말하는 '윤리'와 '에티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다기보단 체감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겠다. <핑퐁>에서의 '언 인스톨'은 윤리적이다. '언 인스톨'은 세상의 정과 반을 뒤엎는다.

스물한 살의 가을. 늦잠을 자고 일어나 해가 질 때 쯤 도서관에 가서 아무 책이나 꺼내 읽는 게 하루의 주된 일과였다. 꺼낸 책들은 끝까지 읽지 않았다. 중간쯤에 끊는 게 다반사였고, 애초에 중간부터 읽은 책도 많았다. 그렇게 조각난 책들은 내 머릿속에서 꼴라쥬처럼 말도 안되는 형태로 합쳐졌다. 그때의 나는 정확히 읽어낸 이야기들 보다 내가 꼴라쥬한 이야기들을 더 좋아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정밀하게 꼴라쥬 작업을 해 보는 게 좋겠다.

학생증을 잃어버린 후로는 도서관에 가지 못하고 있다. 다음주는 꼭 재발급을 받고 도서관에 가고 싶다. 게으른 나는 도서관이라도 가야 뭔가를 한다.

키보드를 산 건 정말 잘한 짓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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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ASIK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