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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1. 18:38 from 하루 낱말

 

 난 정말 현대미술이랑 안 맞는 것 같다. 서양화과 자퇴 한 건 정말 잘한 짓이다. 시청에 필름 맡기러 간 김에 시립미술관에 들렀다. 원래 갈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사진관이 점심시간이라 주변 산책하다가 우연히 들어갔다. 시립미술관이 시청에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시립미술관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로비였다. 로비 오른편에 침대처럼 생긴 쇼파가 있었는데 너무 편해서 잠들 뻔했다. 옆옆자리 아저씨는 코까지 골면서 자고 있었다. 직원들한테 전시 정보 물어보는 건 왠지 번거롭게 느껴져서 핸드폰으로 찾아봤다. 어차피 공짜에 시간도 남으니 특별히 땡기지는 않아도 전시실로 갔다. 첫번 째 전시는 최경자인가 하는 사람의 전시였다. 최승자 시인이랑 비슷한 이름이었는데 정확히 생각은 안 난다. 전시 제목은 '영원한 나르시스트 최경자' 같은 이름이었다. 보통 '나르시스트'는 약간은 부정적인 맥락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전시 중인 작가 이름 앞에서 붙으니까 이상했다. 은연중에 좋지 않은 감정상태의 사람을 예술가의 스테레오타입으로 만들어놓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이렇게 매일 울고 불안해하고 숨이나 막히는 나보다 밝고 건강하고 부지런하고 숨 잘 쉬는 애들이 훨씬, 훨씬 작업 잘한다. 어찌됐든 그림은 예뻤다. 글로는 설명하기 힘든데 색감이 예뻤다. 동기 동생 한 명이랑 선배 한 명이 자주 쓰는 색과도 같은 색이었데 볼 때마다 탐나는 색이다. 외곽처리도 예뻤다. 그림 말고는 죄다 별로였다. 난 아무래도 텍스트의 노예 같다. 텍스트 함량이 부족하면 꼴도 보기 싫어진다. 특히 '내 슬픈 전설의 이야기'라는 섹션에서는 짜증이 났다. 작가의 문제인지 기획자의 문제인지 해당 섹션의 그림에서는 슬픈 전설따위는 느껴지지 않았고 자기연민만 바가지로 느껴졌다. 작가를 '숙명적인 한이 서려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슬픔'의 이유에 대한 설명은 턱없이 부족했고 그 감정이 이미지로 한 방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텍스트도 별로였고 스펙타클의 면에서도 별로였다. '운명'이나 '숙명' 같은 걸로 보는 사람을 납득시키려 하는 건 그리스 비극만으로 충분하다. 물론 '숙명' 이후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거기에 촛점이 맞춰지면 또 다르겠지만. 다른 방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 작가 세 명의 작품을 모아서 기획전을 하고 있었는데 이것도 그리 재미있지 않았다. 텍스트가 대단하면 스펙터클이 조금 딸려도 재미있게 보는데 둘 다 별로 느껴지는 게 없었다. 텍스트도 그냥 뻔했고 스펙터클에서는 아무런 감동이 없었다. 추상척인 형태에 금박으로 마무리, 렌턴으로 불을 비추고 더듬더듬 동굴을 걷는 영상, 상자 속 어떤 인물이 말을 건내는 영상. 상자 속 영상은 비교적 재미있었는데 인물이 하는 말은 단조로웠다. 영상만을 틀어주는 전시실에서 이 작가의 다른 영상을 봤는데 그건 좋았다. 원폭 관련된 인터뷰 영상인데 감각을 미치도록 긁어서 기분 나쁘게 좋았다. 나중에는 도슨트가 돌아다니면서 설명해 줬는데 설명도 그냥 그랬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현대미술이랑 안 맞는 것 같다. 장르 특유의 언어가 나랑 안 맞는 것 같다. 차라리 페인팅으로만 승부 보는 작품에서 울림이 느껴진다. 현대미술의 텍스트는 문학이나 연극, 영화의 텍스트에 비해 부족할 수밖에 없고 개연성을 만들어 나가기도 힘들다. 스토리라인도 제대로 만들기 힘들고. 영상도 퍼포먼스도 영화, 연극, 무용의 걸음마 단계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정교하긴 힘드니까. 그와중에 다른 차원의 감각을 건들여주면 감사한데 그마저도 시도만 하고 끝나는 경우도 많고. 취향의 문제이겠거니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열심히 현대미술과 멀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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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ASIK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