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 다운 다운\\
사지에 힘이 안 들어갈 정도로, 화장실에 가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힘들 정도로 다운된다. '오줌 싸고 싶다', '배 고프다'하는 생각은 드는데 몸은 안 움직인다. 와웅ㅇ
계속해서 누워있다가 주문한 지갑이 생각났다. 문을 열어보니 현관 구석에 조그만 박스가 있었다. 얼른 뜯어서 열었다. 생각했던 거랑 똑같이 생겼는데도 별 감흥이 없었다. 이전 머니클립에 있던 카드와 쿠폰을 옮겨 꽂았다. 도장 10개가 찍힌 오클릭 샌드위치 쿠폰을 봤을 땐 조금 뿌듯했다. 커피 디엔에이 쿠폰 봤을 땐 어제 마신 아이스 카푸치노가 생각나서 침이 잠시 돌았다. 지갑 정리는 20초만에 끝났다. 이걸 위해 몇 시간동안 기대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허무하긴 했는데 앞으로 1년은 쓸 테니까 그동안 천천히 보상받지 뭐, 했다.
시계를 보니 4시가 넘어있었고 어제 맡긴 필름 생각이 났다. 오늘 3시 쯤에 업로드 해 준다고 했으니까 기대를 하면서 노트북을 켰다. 정체를 알 수 없던 첫 롤은 2013년 2월, 인도 가기 직전에 찍은 필름. 인도 필름 정리할 때 히말라야 앞에서 찍은 필름 하나가 사라져있었고 지난 주에 찾은 정체 모를 필름이 히말라야에서 찍은 그 필름이길 바랐다. 바라고 기대해서 실망했다. 기대하지 말아야지, 요즘 계속 생각하는 건데도 고치기는 힘들다. 어찌됐든 사진은 예뻤다. 창원 반림동 살 때 찍은 사진들이라 보는 내내 기분이 이상했다. 경남도립미술관이랑 도청 앞 길, 아파트 단지 내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슬이 사진도 있었다. 안 본지 3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잘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민지가 알바하다가 예슬이를 봤는데 남자친구한테 엄청 애교부리면서 웃고 있었다고 했다. 예슬이는 기분 좋으면 애교부리는 애니까 잘 지내고 있겠지, 생각했다. 사진 중에 현대아파트 상가에 매달려있는 생선 한 마리를 찍은 게 있었다. 아마 생선가게에서 말리려고 매달아놓은 걸 거다. 상가 문 열면 확 들어오는 생선가게 냄새가 싫었는데 오늘은 좀 맡아보고 싶다. 우리집이 그나마 그나마 그나마, 평화롭게 지냈던 시절이 현대아파트 시절일 거다. 거제도로 이사간 후엔 경제적으로 팍팍해져서 그런지 분위기도 더 팍팍해졌다. 아빠 생각나서 짜증나니까 현대아파트 생각은 그만해야겠다.
두번 째 롤은 지난 주, 칠천도에서 찍은 필름이었다. 매번 느끼는 건데, 미니룩스는 뷰 파인더로 볼 때보다 더 넓게 나온다. 더 뒤에서 찍은 것처럼 나온다. 필름 찾을 때마다 느끼는 거고, 동시에 '다음 번에는 한 걸음 더 앞에서 찍어야지' 생각하는데 또 매번 까먹는다. 원래 칠천도 바다는 피코크 그린이나 에메랄드빛이 나는 색인데 사진에는 새파란색으로 나왔다. 라이카 미니룩스에 엑타100 조합 치고는 생각보단 안 예뻤다. 색감으로는 실패한 적이 없는 조합인데 또 실망했다. 기대는 진짜 죄악이다. 기대 안 하는 연습을 제대로 해야겠다. 인지행동치료처럼. 세번 째 롤은 피쉬아이로 찍은 거였다. 김수영 손에 쥐어주고 노량진 오가다가 심심할 때 찍으라고 했는데 제대로 나온 게 거의 없다. 밝은 데서 찍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아마 대부분 실내에서 찍어서 그런 것 같다. 재미따윈 하나도 없는 일상에서 엄지 손가락으로 셔터 몇 번 누르고 뜻밖의 순간에 결과물을 받아보는,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는데 이것도 실패다. 기대를 해서 '실망'이라는 감정을 만나는 거다. '기대를 하지 말자.' 지갑이고 필름이고 다 부수적인 거고 오늘 내가 기억해야 할 건 이거 뿐이다.